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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60대 여성 킬러’를 납득시키는 존재감! <파과> 이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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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이혜영을 <파과>의 영상화를 가능케 한 배우라고 단언해 본다. 60대 여성 킬러, 허무맹랑해 보이는 이 낯선 단어들의 조합은 이혜영을 만나 설득력을 갖췄다. 4월 30일 개봉하는 영화 <파과>는 바퀴벌레 같은 인간들을 처리하는 조직에서 40여 년간 활동한 레전드 킬러 ‘조각’(이혜영)과 평생 그를 쫓은 미스터리한 킬러 ‘투우’(김성철)의 강렬한 대결을 그린 액션 드라마다.

1981년 데뷔한 이래 약 45년간 뮤지컬, 연극, 드라마, 영화를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해온 배우 이혜영은 ‘조각’과 얼마나 닮아 있을까. 혹은, 그는 <파과>의 ‘조각’을 어떻게 조각했을까. 지난 28일 오후 삼청동 모처에서 배우 이혜영을 만나 그의 배우 인생과 영화 <파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통이 있어야 연기가 나온다”라며 인터뷰 내내 예술가의 면모를 진솔하게 내비쳤던 배우 이혜영과의 대화를 옮긴다.


<파과>는 개봉 전부터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됐고, 이제는 국내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어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베를린에서 처음 돌아왔을 때의 기세등등함은 사라지고, 막상 뚜껑을 여니까 초조하긴 했는데, 칭찬 일색이라 모든 게 감사하고, 지금처럼 이런 (취재진이 많은) 현장도 저는 처음이에요. 세상이 달라진 건지, 제가 스타가 된 건지 잘 모르겠네요.

영화 <파과>의 원작 소설이 베스트셀러여서, 이혜영 배우가 ‘조각’을 연기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는데요. 실제로 이혜영 배우가 <파과>를 제안받았을 때는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사실 책을 읽고 나서는 상상이 잘 안됐어요. 제가 본 액션 영화에는 거칠고 뻔한 대사 스타일이 있는데, <파과>의 할머니가 액션을 하는 게 상상이 안 되는 거예요. 사실은 민규동 감독님의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라는 영화를 보고서 이 사람이 화려하고 버라이어티한 사람이다 생각했어요. <카바레>(1972) <어린 왕자>(1974)의 밥 포시 같은 사람은 한국에 한 명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민규동의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를 보면서 ‘저 사람은 뭔가를 알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파과>를 그런 뮤지컬로 만들려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어쨌든, 액션 영화 도전을 고민하다가 결정한 거예요.

영화 <파과>는 조각의 드라마입니다. 조각은 오랜 시간 감정 없이 방역(작중 청부살인을 이르는 속어)을 하며 살다가, 점차 삶의 의지를 느끼게 되는데요. 조각이 계속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하셨나요.

조각은 류(김무열)의 환생이라고 생각했어요. 조각은 손톱(조각의 어린 시절 이름)이 되기 전, 그저 살아남기 위한 존재였다가 손톱이 되고 쓸모 있는 인간이 되었잖아요. 류가 죽고 나서 사실 조각은 살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류의 환생이 아니고서야 이 여자가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데, 그래서 여유와 초월적인 태도를 가지고 사는 게 아닌가. 그녀의 힘은 수수께끼예요.

<파과> 속 인물들의 관계는 단어로 딱 잘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특히나 조각과 강 선생(연우진), 그리고 조각과 투우(김성철)의 관계가 그런데요. 배우 본인은 두 종류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강 선생을 통해서 류를 발견하는 거예요. 마지막에 강 선생을 향해 절을 하잖아요. 저는 그거 하나가 둘의 관계를 설명해 주는 것 같아요. 조각과 투우의 관계는, 김성철이라는 배우의 힘으로 만들어간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만든 건 없어요. 그런데 김성철의 놀라운 힘, 어리고 저돌적이면서 청순한 힘이 있어요. 그건 성철이가 한 살만 더 먹어도 안 나오는 것 같아요. 딱 그 나이에만 가지고 있는 게 있어요.

이혜영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들은 전형성에서 벗어난 캐릭터들이 많은데요. 이혜영 배우가 <파과>를 촬영하며 스스로 ‘조각’을 조각했나요?

조각의 모습은 감독님이 상상한 대로예요. 걸어가는 것에서부터 옷까지, 민 감독이 어떨 때는 “너무 귀여워요, 선배님. 그거 안 돼요” “지금 우시려고 그러는 거예요? 그거 안 돼요” “지금 감정 너무 길어요. 짧게 해주세요”라던가 굉장히 모든 면에서 절제시켜 줬어요. 일일이 코치를 받고 절제하고, 계산된 조각이에요.

그럼 실제로 영화의 완성본을 봤을 때, 본인이 본 조각의 모습은 어떻던가요.

상상했던 조각보다 훨씬 좋았어요. 저는 촬영 내내 불안했고, 부상은 계속 있는데 다치기만 하고 보람이 없으면 안 되니까, 배우로서의 고독감이 몰려오고, 나는 이제 나이를 먹었는데 부상이 회복 안 될까 봐 걱정을 많이 했어요. 이 도전이 어떤 결과를 내게 될까, 하면서 일지도 매일 썼어요. 주로 감독님 원망하고, 현장에서의 어려움, 나를 괴롭히는 10가지도 넘는 상황들을 썼어요.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는 나의 이 원망이 마지막에 미안함으로 바뀌기를 절실하게 바라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베를린에 가서 <파과>를 처음 딱 보는데 드는 생각이 ‘감독님한테 미안하다’가 1번이고. 감독님이 다 생각이 있으셨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작발표회에서는 함께 베를린영화제에서 상영된 <미키17>보다 <파과>가 더 재밌다고 하셨는데요. (웃음)

<파과>는 매력적이에요. 인물들이 다 살아있잖아요. 배우가 연기를 잘하느냐, 못하느냐는 감독에게 달려있다고 믿는데, 배우들이 다 개성이 있고 매력이 있어요. 한 사람만 추적해도 재밌고. 그래서 민규동 감독님이 성공했다고 생각하고요. 봉준호 감독님은 결코 그런 걸로 삐질 분이 아니고, 듣지도 못했겠지. (웃음)

이혜영 배우님은 <당신 얼굴 앞에서>(2021) <소설가의 영화>(2022) <여행자의 필요>(2024) 등 홍상수 감독님의 작품에도 많이 출연하셨잖아요. 홍상수 감독님의 현장과 민규동 감독님의 현장은 극명하게 다른 분위기일 것 같은데요. <파과> 촬영 현장은 어땠나요.

홍상수 감독님은 아예 대본이 없는 사람이에요. 아무런 선입견도 없이, 아침에 그냥 나가는 거잖아요. 그런데 민규동 감독님은 ‘강철 콘티뉴이티’. 전날부터 어떨 때는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서 3개의 대본이 와요. 저는 그런데 머릿속에 다른 시나리오를 가지고 현장에 나가거든요. 처음에는 “감독님, 저는 왜 여기 앉아 있죠? 저는 저쪽에 앉는 게 더 좋은데”라는 식으로 굉장히 부딪혔어요. 그런데 <파과>에도 ‘쓸모’라는 단어가 나오잖아요. 그래서 내가 쓸모 있는 배우가 되려면 이 프로세스 안에서 살아남아야 되겠다, 그래서 민규동 감독님 작품을 통해서 모두와 함께 목표를 가지고 가는 경험을 했죠.

지금은 민규동 감독님이 어떠세요. (웃음)

지금은 너무 사랑스러워요. 정말 얌전하고 화 한 번 안 내잖아요. 너무너무 젠틀하고 스윗해요.

<파과>에는 이혜영 배우의 수많은 액션 장면이 등장합니다. 특히나 가장 힘들었던 장면을 꼽아주신다면요.

로프 타고 내려오는 장면. 그리고 맞고 넘어지는 게 제일 힘들어요. 한 번은 이태원 촬영을 2박 3일인가 3박 4일 잡아놨는데, 제가 첫날 싱크에 부딪혀서 갈비뼈가 나간 거예요. 그런데도 촬영을 강행했어요. 그리고 또 한 번 리허설을 하고 나면 다리가 터질 것 같고.. 그런 데에서 체력의 노쇠함이 느껴졌죠.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2002)에서 액션 연기를 하신 이후로 약 23년 만에 다시 액션 영화에 출연하신 셈인데요. 당시의 액션과 이번의 액션은 어떻게 달랐나요.

<피도 눈물도 없이> 할 때 정두홍 무술 감독에게 훈련받은 기억이 있어요. 그때는 눈 뜨면 정두홍 무술감독 만나러 가고, 그때는 기계처럼 무술이 되고, 발차기도 제대로 많이 됐어요. 류승완 감독은 본인이 액션이 되는 사람이에요. 정두홍도 최고고, 류승완도 최고고. 최고들에게 맨 처음 학습되다 보니. 그때 매달리기, 발차기, 돌려차기 한 기억들이 막연하게 있어요. 지금도 푸시업 제가 더 잘할걸요. (웃음) 그런데 이번에는 쿨하게, 기운 빼고,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액션을 했어요. 사실 그렇게 하는 게 제일 힘들어요. 제가 순발력이 되게 떨어지는 사람인데, 한 프레임에 감정, 액션을 기술적으로 다 표현해야 했어요.

<파과> 속 ‘해피랜드’에서의 마지막 테이크를 찍고 민규동 감독, 김성철 배우와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고 했어요. 당시의 감정은 어땠나요.

제가 제일 먼저 울었어요. 신나고 좋아서가 아니라, 왜 지금 끝났지. 방향을 잃은 느낌. 조각을 완성하기 위해서 왔는데, 끝나니까 허탈했나 봐요.

벌써 약 45년간 연기를 하고 계세요. 배우라는 직업에 특별히 애착을 갖고 있으신 건가요.

배우는 고통이 있어야 액트가 나와요. 배우라는 직업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고요. 배우라는 직업은 너무 고통스럽고, 모든 역할을 할 때 고통스럽고 괴로웠지 즐거웠던 적은 없어요. 그런데 저처럼 고통에 익숙한 사람들이 배우를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언제나 ‘나 좀 통제해 주세요’하고 살았어요. 너무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게 늘 두려웠고, 오히려 결혼과 자식, 안정된 가정 속에서 연기가 안정적으로 됐어요. 굉장히 심리적으로 불안한데, 그나마 직업이 배우였기 때문에 용서되고 이해되는 게 있는 거지. 연기가 나를 살아나게 했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즐거움을 줬을 수도 있고요. 연기를 하면서 나는 신이야, 잘 났어, 그렇게 생각하고 한 적이 없어요.

오랫동안 활동해온 만큼, <파과>와 같은 액션 영화에서 여성 노인 킬러를 연기한다는 사실이 남다르게 다가왔을 것 같아요.

제가 배우를 시작하던 시기에는 여자 배우의 역할은 남자의 상대적 존재였어요. 멜로, 욕망의 대상이라던가, 그 외의 롤은 코믹한 역할이라던가 귀신이라던가 그랬죠. 그런데 한참 전부터 독립적인 여성 캐릭터들도 다양해지긴 했죠. 그렇다고 멜로의 여자 주인공이 웃기다고 볼 수는 없는 거지요. 저는 그래서 여배우, 여자로서를 떠나, 한 인간으로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배우도 늙든, 젊든, 여자든, 남자든 다 떠나서 한 인간 존재로서 생각해 봐야 해요.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